잔잔한 페이스북에 물의를 일으켜, 먼저 당사자들과 거기에 연루된(?) 분들과 그리고 그걸 지켜보셨을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사과를 드립니다. 

제가 빠르게 댓글달 수 없었던 이유는 그때 어머니의 칠순잔치를 열고 있는 도중이었다는 비겁한 변명을 해보며 

행사를 치르고 돌아와 짧다면 짧은(이제 긴글은 못쓰겠숴. 흑흑) 변을 해보려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1. 정치와 혐오에 이용되어 온 성서

성서를 해석하는 다양한 신학적 견해들이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인들은 동성애와 죄를 연결짓고 그 근거를 성서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그 근거를 성서에서 찾을 수 있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해서 늘 옳은 것은 아니었죠.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해석들과 가능성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이미 많은 정치적(혹은 정치에 필요한) 이슈들은 성서를 근거로 사람을 교회문 안과 밖으로 가르고 속되다고 차별해왔으며 

몇몇은 후대에 와서 대부분 '죄'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것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명백한 죄로 여겨졌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에 동의했고 진실이라고 믿었습니다. 

아주 대표적인 예에,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이 있었습니다. 성서에는 흑인은 저주받은 함(이 맞나;) 족속으로, 여성은 부정한 존재로서 

차별해도 합당한, 죄스러운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성서의 시대에는 장애인이 그랬고 과부와 창녀가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위에 열거한 모든것들이 '구원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고쳐야 할 죄'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노동자에 대한 많은 시각들이 있을것으로 사료되지만 그것은 차후의 담론거리로 남겨놓지요)

하나님은 과연 그런 문제로 그들의 구원문제를 좌지우지 하실까요? 

2. 그래서 성서는 폭력적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저는 그렇다. 라고 생각합니다. 레위기의 그 수많은 구절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모세에게 얘기하지만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에 어땠을지는 몰라도 현대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 안에는 끔찍할 정도로 폭력적인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서 자체를 문자적으로 적용했을 때 많은 위험과 오류들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한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는 가장 폭력적인 책이 될 수도 있으며 잔인한 책이 될 수도 있음을 말이죠. 

벌써 발끈하며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책으로 교훈과 책망을 하기에 유익한 무오한 것" 이라고 성을 내실 분들의 원성이 들리는 것만 같은데요. 

오해하지 마실 것은 성서가 무오한 책이 아니며 문자적으로 적용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겁니다.

3. 그렇다면 폭력적인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는건가?

역시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예. 입니다. 

다만 성서에 쓰여진 이야기들은 그것의 사실여부나 문자 하나하나보다, 그 뒤에 숨겨진 의도나 의미들이 더욱 중요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길 뿐입니다. 

성서 한구절 한구절을 자세히 아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성서를 통해 말하시려는 그 분의 의도, 성서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주제를 아는것, 

즉, 성서를 보는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저의 이런 태도가 성서를 모독하는 것이라거나 교만한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서를 근본적이고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의도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제가 어떤 분의 글귀를 인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이 '잘들 한다 ㅉㅉ' 라고 쓴것을 인간이 '잘한다 ㅋㅋ' 라고 써버리면 어떤 일이 생기는걸까 에 대해 고민을 많이했다" 라는 글귀를 페이스북에 인용하며 

'나는 성서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 썼습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타인을 그리스도의 품에서 배제하거나 자신들이 쌓은 거룩한 벽 밖으로 밀어내면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잔인해도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하는 것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가장 낮은 자리에 오게 하셔서 모든 사람들을 섬기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 

예수가 성문 안 사람들이 아닌 성문 밖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즐거워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때 

그분은 그렇게 작지 않고,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으며, 그렇게 잔인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분이셨다면 어떤 분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오셨을때, 

율법학자들과 친하게 지내며 사람들에게 죄를 '인지' 시키고 다니시는게 예수님의 가장 큰 임무였을 것입니다. 그게 만약 죄라면 말이죠. 

예수님이 21세기에 오신다면 누구에게 찾아가실까요? 

만약 예수님께서 '죄인의 친구' 시라면 예수님은 정말 '죄인의 친구' 이신걸까요, 아니면 '죄인이라고 비난받던 약자들'의 친구실까요?

4. 동성애가 문제일까? 성 표현방식에서의 착취와 학대가 문제일까.

동성애가 죄처럼 여겨지는 데에는 동성애=음란=방탕=문란 이라는 오명이 덮어씌워져있습니다. 
확실히 성서에는(신약성서에서도) 

성결이나 그 밖의 이유가 아니라 그리고 '동성애' 자체가 아니라 동성간 성행위에 수반될 수 있는 학대와 착취를 금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구절들이 존재합니다. 

자, 그런데 이성애에는 그런 것이 없을까요? 이성애는 그 자체로 선한 것이며 동성애는 그 자체로 악한 것일까요?


실제로 '동성간 행위'에 대해 언급한 로마서 구절을 연구한 존 보스웰과 L.윌리엄 컨트리먼은 바울이 동성간 성행위를 단죄하긴 커녕 

그것이 윤리적으로 중립적이라고 가르친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이성간 성행위와 마찬가지로 동성간 성행위도 그 자체로는 올바르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며, 

선하게 쓰일 수도 악하게 쓰일 수도 있을 뿐,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예전에 예배에서 '드럼'이라는 악기를 쓰면 악마의 음악이라며 싫어하셨던 장로님들이 떠오르네요.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것은 존재할까요? 음악도 지성도 감정(심지어 분노와 쾌락, 화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것이며 

잘 써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을 뿐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없습니다. 악함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러면 왜 바울이 하필 동성행위를 언급했는가. 
'로마서' 전체의 계획을 분석해본다면 그 목적이 드러난다고 다니엘 헬미니악이라는 학자는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성결문제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며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갈라져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려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성결문제를 따지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 로마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할례를 받았다든지 받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공동번역)-갈라디아서 5:6

"주 예수를 믿는 나는 무엇이든지 그 자체가 더러운 것은 하나도 없고 다만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더럽게 여겨진다는 것을 알고 또 확신합니다."

(공동번역) 로마서 14:14

베드로 역시 이야기하죠.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사람이라도 속되거나 불결하게 여기지 말라고 이르셨습니다" 

(공동번역) -사도행전 10:28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공동번역)-사도행전 10:34-35

5. 맺기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특정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특정한 관념이 옳다는 시대 속에 살았으며 특정한 믿음의 신조들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신약 성서의 많은 부분은 그런 것들을 깨뜨리는 데에 그 의의를 가집니다. 

성서가 그런 문화와 관념까지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적용하거나 중립적으로 적용하면 많은 문제들이 생깁니다. 

이제 그런 문자적 적용들을 경계하거나 수정하는 많은 신학적인 입장과 견해들이 존재하며 우리는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고찰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시작한 담론이, 텍스트 속에서 저의 부족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신자로 서려고 하는 많은 동성애 교인들과 그 외 성소수자들, 다양한 소수자 교인들의 앞을 가로막고 상처를 주며 쌓는 

거룩한 벽의 거룩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계속해서 의심하겠다는 말씀밖에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그들에게 계속 돌을 던지는것일 수 있다는거 아시나요. 여러분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십시오. 

그때 쭈그리고 앉아있던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시고 바닥에 쓰시던건 "시발시발시발"같은 멘붕어였을거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짐작해봅니다.

+참고: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 여인에게 하셨던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는 예수님의 대사는, 

역사적으로 배교했던 교회들을 용서하기 위해 후대의 교회들이 추가한 것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아니 그냥. 그러타구여. 

단언컨데 성서는 제 삶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문자적이고 근본적으로 적용해야 했다면 그것은 제 인생에 그런 영향을 끼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문장은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 라는 책의 추천의 글을 쓴 '존 쉘비 스퐁'의 말이기도 하고 저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일부는 다니엘 헬미니악의 책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 에서 인용하거나 따와서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