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번 수련회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외유' 에 가깝기도 했고

저 또한 수련회를 빙자하여 오랜만에 '보드'를 타야겠다는 욕망이 더 강렬했던

약간은 불순한 의도의 수련회에 가까웠지만, 나름대로 '예배' 에 대한 소망을 조금은 품었었지요 

개인적으로, ,심적으로 제가 요즘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더 그랬어요 



그런 제가 수련회를 다녀온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정말 오랜만에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세미나를 하나 듣고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론 이 세미나가 제게는 기도가 되었고 예배가 되었습니다




세미나의 주제는 '이성' 이었습니다

아, 이 얼마나 어렵고도 심오한 주제인가요 ?  

명색이 '이성' 에 관한 세미나라고 했지만 이미 오랜시간 여러번 교회내 세미나에서 실망을 경험한 제게

기대따윈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젠 제목만 대충 봐도 내용을 추측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사실 제가 추측했던 것은 두갈래였습니다

우리 같은 보수적인 교단에서 '이성' 세미나라면 크게 두가지 갈래니까요 


1. 영과 육의 '순결' 을 지키자
- 특히 남자야 그렇다치고(뭐, 이색ㅎ...)  
   여자 늬들은 남편 생길때까지 섹스는 곧 문란행위. 처녀막 단디 챙겨라. (쓰면서도 역겹네요)

2.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성차 (gender)
- 쉽게말하면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혹은 아내는 남편을 그리스도에게 하듯 섬길것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따위의 개소리  


하지만 이번 것은 그를 뛰어넘는 신선함 (-_-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많이 부족하더라도 느낀 바와 생각을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1. 성기 중심적 논의

남 녀의 성기구조와 그 모양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때문에 예로부터 양기니 음기니 태양이니 달이니 하는 식으로 남녀를 상징화하기도 했지요

역사적으로는 위의 상징화는 점점 도가 지나쳐  남성은 '씨' 를 뿌리는 능동적 주체이고

여성은 그를 받아들이는 수동적 '밭'의 역할을 한다는 헛소리가 이론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으며

사실 이런 논의는 아직까지도 젊거나 어르신들이거나 상관없이 누군가의 입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남성은 능동적 공격적인 '주체'

여성은 수동적이고 포용적인 '객체' 의 역할을 얻게 되었으면서도 

남자아이를 낳냐 여자아이를 낳냐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 '주체'(그들에 의하면 무려 주체) 가 아닌 '객체' 가 짊어지게 되는 

어이없고도 비겁한 역사가 반복되어왔죠 



+덧

유전학적 지식으로 볼 때 정확히 부와 모로부터 염색체의 반씩을 물려받아 태어나는 아기는 남성의 '씨'(gene) 뿐만 아니라 여성의 '씨'(gene) 역시 동일하게 받게 되는 것이며  maternal gene(모계유전자-ex.미토콘드리아) 이나 maternal effect 와 같은 보다 정확한 유전 현상까지 고려할 때 태아는 오히려 유전적으로는 모계 쪽 연관이 더 큰것으로 밝혀져있습니다

'남자 아이를 통해 대를 잇는다' 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고 무식한 생각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게다가 남/녀의 성결정은 여자가 가진 X염색체가 아니라 남자가 가진 Y염색체에 의해 결정됩니다. 즉, 남자 아기를 낳냐 여자 아기를 낳냐의 문제는 100% 정자를 제공하는 남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수 있습니다 



너무 서론이 길었군요. 각설하고,


이 세미나의 처음은 성기 중심적 논의로 개념 정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sex 와 gender 의 차이점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sex는 생물학적인 것으로 무조건 나쁘고 위험한 존재인 양 설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거기까진 개념 정의의 불완전함으로 그냥 저냥 넘길 만 했습니다



남녀칠세 부동석이라는 옛 말을 언급하시며

남자는 7세부터 페니스가 뻣뻣해지기 시작하고

여성은 7세부터 '액'(이라고 표현하시더군요) 이 나오므로 기분좋음, 쾌락을 느낄 수 있다며

그래서 7세부터는 남녀를 떼어 놓았다는 설명을 할 때에도 

비록 남 녀의 교제를 저런식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액'은 질에 상처를 방지하기 위해 나오는 육체적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쾌락'으로 인식하는 개념 결여에 불쾌감과 회의감이 몰려왔지만 넘겼습니다

( 보수교단에서 그러한 식의 논의는 이미 지루할 정도로 흔하니까요 )



남 녀의 교제는 육체적으로 진행됩니까? 아니, 거기에 집중되어 있습니까?

네 일면 사실입니다

그러나 남 녀의 교제가 육체적으로 진행됩니까? 아니, 오로지 거기에만 집중되어있습니까?

아니요

그 교제가 진실하다면 절대로 그럴리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교제는 그렇게 단순하고 1차적이지 않습니다






2. 성기 중심적 논의 받고, 남성 중심적 시각 얹고 !

제가 의아해지기 시작한 시점은 남자와 여자의 기질적인 차이를 성기구조로 설명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남자의 성기 구조는 튀어나와있으며 성행위시 여성에게 무언가(정액)를 전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늘 사랑관계에서 여성에게 무언가를 주기 좋아하며 모든것을 주려고 한다는군요
 
이 말씀을 하시면서 풍기는 뤼앙스에 심지어 남자의 이런 기질에 대한 숭고함까지 깃들어 있었다는 느낌은 

그저 저의 기분탓이었을까요? 그랬기를... 


마찬가지로 여성의 성기 구조는 들어가 있으며 성행위시 남성에게 무언가(정액)를 받는다고 했지요

그러므로 여자는 늘 사랑관계에서 남자로부터 무언가를 받기 좋아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여성을 넘어가게 하려면 루이비x 빽이면 충분하다는 여성 비하적 발언을 듣고

슬슬 진행자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어떻길래 이런 속물적 편견이 형성되어버린건지 의심되기 시작했죠)



사랑을 주고받음에 역할이 정해져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한 사랑은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상호 작용이고 주고받는 것이었죠

그게 물질이든 마음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제게 사랑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한 쪽만 주거나 받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희생이고 이기심이라고 저는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의 단언에 기분이 언짢으신가요?

그렇다면 대체 어떤 부분이 그런지 제게 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저는 도무지 이렇게 밖에 생각을 못하겠거든요



더군다나 성교육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성기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논의가 아주 오래전에 폐기되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오히려 요즘에는 이러한 논의가 주는 불균형과 불평등을 방지하기 위해  

'삽입' 이라든가 '남성이 여성 안으로 들어간다' 는 식의 표현대신

'남성과 여성의 성기가 만난다' 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 편입니다   
  




3. 가족이데올로기적 논의


자녀는 분명 가정의 축복이고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비정상 혹은 궁극의 사랑의 결실로 표현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불임 부부나 성 소수자의 사랑과 결합

혈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족들의 사랑과 결합을 불완전한 결합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가족 이데올로기는 물론 결혼으로 맺어진 두 부부와 자녀를 완벽한 가정의 모델로 제시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결합은 불완전한가요? 잘못되었나요? 완벽하지 않은가요?

대체 누가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제게 사랑의 중심은 온전한 두 사람입니다 

또한 제게 사랑은 두 개의 깨어진 하트가 만나 하나의 하트가 되는 것이 아닌

다른 모양, 다른 색채를 지닌 두 하트가 만나 두 개의 또 다른 하트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지지와 존중이 가장 중요한 사랑의 조건입니다


십분 양보하여 가족 이데올로기의 기준을 가지고 바라보더라도 
 
부부와의 사랑과 부모/자녀의 사랑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한 데 뒤섞어 사랑의 인과, 최고의 결실로 설명하는것은

'자손남기기' 라는 목적 하나가 마치 결혼의 가장 크고 중요한,

그리고 유일한 목적인 것 처럼 호도합니다
 




4. 맺기 

제가 나가는 독서토론모임의 멤버 중 한 분이

'그 분은 플러그와 콘센트에 대해서도 남다른 철학을 갖고 계실것 같다' 고 하셨는데요

자, 그래서 결국 플러그와 콘센트에 의인화를 해보자면

플러그는 늘 전기를 줍니까? 콘센트는 늘 전기를 받기만 하던가요?

굳이 의인화하지 않더라도 전류는 그 둘에 동일하게 흐릅니다


단지, 그 둘의 모양이 튀어나와 있고 들어가 있는 이유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개체를 그냥 이어 붙이는 것보다 그렇게 맞물리게 하는 것이

더 '강력한 연결' 이기 때문일 겁니다  

즉, 붙었을 때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한 이음새', '굳건한 결합' 을 만들어주기 위한

만든 이의 배려일 겁니다


'튀어나와' 있고 '들어가'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둘이 '이어져' 있다는 것

바로 그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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