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옳고 그름에 목숨을 걸던 때가 있었다

(요며칠 블로깅의 처음이 늘 이런식으로 시작하는것 같다 -_- 왜지?)

이런 유형의 사람을,

MBTI 검사에선 T수치가 높다그러는데 ㅋㅋㅋㅋ 뭐 쨌든.


옳지 않음을 보게 되면 그것을 비판하는 데에 열을 올리기가 일쑤였다

그리고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

불의를 자행하는 사람이 잘되는 세상을 보며

늘 신은 있기나 한건지,

내가 믿는 하나님은 있기나 한건지 불평하고 원망하곤 했었다


지금에 와서 내린 결론은

세상에 종말이 있다면, 아마 악은 또는 악인은 그 종말때까지 있을거라는 거다


즉,

나 하나가 그것을 비판하고 손가락질해 봤자,

악은 눈하나도 꿈쩍하지 않을거라는 거지.


그러면 나는 앞으로 쏼라- 거릴 이 많은 지면을 할애해가면서

그냥 그러려니-  안주하라는 말을 하고싶은걸까?

물론 아니다 

그걸 눈감아주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악'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필요하다 

인간은 참 간사해서 발을 들여놓다 보면 금방 물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분노도 해야 하고 비판도 해야 한다

기독교에서 하나뿐인 신의 아들이며 흠없는 분이라고 여겨지는 예수님조차

교회에서 장사하고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 상을 부수고(응?) 독사의 자식들아- 꺼지라고(응?) 고함도 치셨지 않은가



문제는 거기에서 그쳐봤자 내가 원하는 '밝은 세상' 은

단 한 뼘도 넓어지지 않을거라는 사실이다

정말 정의로운 세상을, 그 지평을 조금이라도 넓히고 싶다면

내가 '그렇게 하면' 된다



-_- 이쯤되니 무슨 공익 광고의 카피문구 같긴 한데

그냥 가끔 '정의' 에 대하여 떠벌떠벌 말은 많은데, 원망섞인 한탄과 한숨을 내뱉는 사람들은 많은데

정작 그 사람들의 삶은 그러한 지독한 회의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할때

그 회의 자체에 묶여 허우적대며 힘들어하기만 할때

정말 정의를 원하기는 하는걸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울 때가 있어서... 

결국 화만 내고 있어봤자 자기 마음만 불행해지는 것을.......

그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만큼이나 나 자신이 할 수 있는것을 하는것 또한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싶어서 이런다

몇 해전 내 가까운 지인중 하나가 그랬었고...

(하긴 내가 누굴보고 지금- 하는 생각도 역시 들고 있으나 써내려가는 글은 끝까지 써야하니 조금만 참아주시기를)



게다가 살다 보면 그 '옳고 그름' 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순 없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

때론 '옳고 그름'이 그 자체로 족쇄 혹은 원칙이 되어

정말 커다란 선의는 보지 못하고 그 원칙에 갇혀버리는 일이 생기는데

이 상황에서 정말 정의 = 원칙 으로 등식을 세울수 있느냐는 것이다


심리학에 보면 콜버그라는 사람이

' 불치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아내를 가진, 그러나 아내를 살릴 약은 살 돈이 없는 남편 heinz씨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약국의 유리창을 깨고 약을 훔치는 것이 불법인가? '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양상을 분류해 도덕의 발달 단계를 몇가지로 나눠놓았다

이걸 'Heinz 의 딜레마' 라고 하는데

그 행동 자체에 대하여 옳다/그르다 를 판단하는지

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어떻게 합리화 하는지에 따라

도덕발달 수준을 '전인습적 단계, 인습적 단계, 후인습적 단계'로 구분한다

행동 자체에 대한 옳고 그름, 그 원칙만으로 모든 상황을 적용하기에는

때로 인생은 너무 ... 뭐냐... 에... 애매한 경우가 있더라는 거지


이쯤에서 

그렇게나 옳고 그름에 목매었던 내게 충격을 주었던 누군가의 기도 한구절이 기억나서

그 말을 끝으로 허접한 끄적임을 급 마무리 한다 !

(대체 뭘 말하고 싶은건지 좀 글이 분열적이긴 하지만 대강의 맥은 잡으셨으리라 믿어본다 )


 
 
 
 
 

아름다운 기도

                                                                          송기원 교수


나와 아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오른손잡인데 아내는 왼손잡이다.
 
그래서 습관을 따라 국그릇을 왼쪽에다 잘 갖다 놓는다.

별거 아닐 것 같은 그 차이가 신경을 건드린다.



거기다 나는 종달새형이다.

새벽시간에 일어나 설친다.

늦잠을 자면 무조건 게으르다고 여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올빼미형이다.

밤새 부엉부엉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도대체 맞는 구석이 없다.


나는 물 한 컵을 마셔도 마신 컵은 즉시 씻어 둔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언제 해도 할 일이며 제가 다시 손을 댈지 모를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그게 안 된다.

찬장에서 꺼내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한꺼번에 씻고 몸살이 난다.



나는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떠나야 할 시간에 화장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가가서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화장품 뚜껑이라는 뚜껑은 다 열어 놓고 있다.

나는 그게 안 참아진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다.
 
“아니, 이렇게 두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향 다 날아가고.

뭐 땜에 비싼 돈주고 화장품을 사.
차라리 맹물을 찍어 바르지. 확 부어버려. 맹물 부어줄까 그래.”


거기다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다.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성경책까지 들이밀었다.

“여보, 예수님이 부활만 하시면 됐지,
뭐 때문에 그 바쁜 와중에 세마포와 수건을 개켜 놓고 나오셨겠어?

당신같이 정리정돈 못하는 사람에게 정리정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으셨던 거야.

그게 부활의 첫 메시지야. 당신 부활 믿어. 부활 믿냐고?”


그렇게 아내를 다그치고 몰아세울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야, 이 자식아, 잘하는 네가 해라. 이놈아, 안 되니까 붙여 놓은 것 아니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생각의 전환,
그렇게 나 자신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게 있다.
나의 은사는 무얼까?
 
하지만 뜻밖에도 너무 간단하게 은사(gift)를 알 수 있다.

내 속에서 생겨나는 불평과 불만

바로 그것이 자신의 은사인 것이다.

일테면 내 아내는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종이 나부랭이가 나뒹구는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편한게 없다. 오히려 밟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는 금방 불편해 진다. 화가 치민다.

이 말은 내가 아내보다 정리정돈에 탁월한 은사가 있다는 증거다.
 
하나님은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상대방의 마음을 박박 긁어 놓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무기로 사용하라는데 있지 않다.

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다.

바로 그 때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아내한테는 뚜껑 여는 은사가 있고 나에게는 뚜껑 닫는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아내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었다.

아내가 화장한다고 앉아 있으면 내가 다가가 물었다.

"여보, 이거 다 썼어? 그러면 뚜껑 닫아도 되지.
이거는? 그래, 그럼 이것도 닫는다."

이제는 내가 뚜껑을 다 닫아 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야단을 칠 때는 전혀 꿈쩍도 않던 아내가 서서히 변해 가는 것이다.

잘 닫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세게 잠갔던지 이제는 날 더러 뚜껑 좀 열어달라고 한다.

아내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
그렇게 철들어진 내가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

“제가 젊었을 때는

하나님에게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되었을 때
인생이 얼마나 덧없이 흘러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평안히 살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늙어 여생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저는 저의 우둔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저를 변화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드렸더라면
제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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